“‘우애’ 정치를 기반 삼아 자립과 공생의 길로 가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탈대일본주의’ 한국어판 출간
“팍스 아메리카도 팍스 차이나도 아닌 팍스 아시아나로”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동아시아 상황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 우선 정책으로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하면서 이 지역 경제 불안도 날로 커져간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랄까.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이 같은 미·중 갈등을 푸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때마침 번역·출간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의 ‘탈대일본주의(脫大日本主義)’가 동아시아 국가들에 새로운 국제 질서 모델을 제안하고 성숙한 국가로 나아가는 전략을 제시해 눈길을 모은다. 2년 전에 원본이 나온 이 책은 ‘자립’과 ‘공생’을 키워드로 중규모 국가들의 자립을 위해선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으로 지역 패권국가를 현명하게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어판 출간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 대국화를 꿈꾸며, 헌법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미국이 시키는 대로 전쟁에 협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지난 2년 동안 한반도는 평화를 향해 활발히 움직였지만 일본이 다시 대일본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아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탈대일본주의를 책으로 펴내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30일 서귀포시에서 열린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하토야마 전 총리
이 책은 ‘성장 전략’이 아닌 ‘성숙 전략’을 기반 삼아 모두가 우애의 ‘성숙 국가’로 함께 나아갈 것을 주요 메시지로 삼는다. 그러면서 경제대국의 여세를 몰아 정치대국(그레이트 파워)으로 도약하겠다는 일본인들의 희망은 허망한 꿈이라며 경계한다. 과거 일본인들이 경험한 대일본제국의 파탄을 교훈 삼아 자유와 인간을 존중하는 중규모 국가(미들 파워)를 이웃나라들과 더불어 착실히 만들어가자며 그 중추적 역할을 일본이 맡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제1장 ‘대일본주의의 환상’에서 글로벌리즘의 폐해와 이에 대립하는 ‘우애’ 이념을 설명하고 과거와 현재의 일본 정치 상황을 분석·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탈대일본주의를 제안한다. 이어 2장 ‘자립과 공생의 길’에서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살피며 미국 종속 관계에서 탈피하고 강대국 사이에서 정치적·경제적 자립을 꾀하는 방안을 내놓는다.

제3장 ‘성숙의 시대를 위한 국가의 모습’에서는 성장 전략이 아닌 인간 중심 성숙 전략으로 나아가는 국가의 모습을 다루는데, 여기에 제시된 4가지 전략은 ‘대일본주의 탈피’,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추진’, ‘공정한 사회 성립’, ‘국민국가 통합 중시’다. 마지막으로 제4장 ‘탈대일본주의를 향하여’는 국익을 위한 정치의 역할과 ‘팍스 아시아나’를 꿈꾸는 동아시아 공동체 국가의 자세와 비전을 이야기한다.

요컨대, 군사력과 무력에 의존해서는 진정한 평화가 달성되지 않으며 대일본주의에서 벗어나 미들파워 국가의 규범을 만들어 실천할 때 일본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된다는 것. 이를 위한 핵심 개념이 우애로서 상호간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면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난 저자는 증조부 가즈오(중의원 의장), 조부 이치로(총리), 부친 이이치로(외무상), 동생 구니오(문부·노동·법무·총무상) 등 일본 정계를 대표하는 정치가 집안 출신으로, 1998년 민주당 창당 후 당대표, 간사장에 이어 2009년에는 내각 총리대신으로 선출돼 활동한 바 있다.

이 책 핵심어인 ‘우애’는 조부 이치로가 강조한 것으로, 저자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리즘’의 대립 이념이자 자유(자립)와 평등(공생)의 가교격인 ‘우애’를 나 역시 정치 행동의 나침판으로 삼고 있다. 종속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친미 보수 노선의 종착점은 일본의 국가로서 자립 상실이다”며 거듭 경계한다.

2013년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를 설립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앞장서는 그는 총리 퇴임 후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보상을 촉구한 데 이어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한국의 해방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에 식민지 시대에 많은 독립운동가기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그 영전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새로운 한·일 관계에 희망의 씨를 뿌린 바 있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3·1 독립운동 100주년 특별 토론회’에서는 ‘경술년 한일합방은 원천무효’라는 입장을 천명하며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출범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번 한국어판 출간에 앞장선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은 “최근에 하토야마 전 총리와 중국·일본에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한·중·일을 아울러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그의 노력에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며 “그의 철학이 집대성된 저서 ‘탈대일본주의’를 통해 한·일 관계라는 단면성을 넘어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역할을 한·중·일이 함께 수행해 가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중앙books. 김화영 옮김. 28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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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대일본주의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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